마삼중과 박지현이 보여준 청년의 허상

2022. 5. 28. 02:48글/격동의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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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라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과장 조금 보태면, 인간의 태동과 동시에 정치행위는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오랜 시간동안 정치는 연배가 있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청년정치는 옛날에도 시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대세는 아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동안 대세가 아니라는 것은 마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이 지혜롭지 못해서 생각해내지 못한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국힘의 마삼중과 더민주의 박지현이 왜 청년정치라는게 허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인간이 경험을 통해 쌓는 지식과 그것을 기반으로 한 지혜는 필연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요즘처럼 정보의 홍수가 범람하는 시대에서는 인터넷에 검색만 해보면 다 나오니깐 자칫 내가 세상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오판하기 쉬운데 정보를 횔용하는 지혜는 경험에서부터 나올 수 밖에 없다.
반면, 인간의 욕심은 갓난 애기나 다 늙은 노인이나 그 크기가 같다. 속된 말로 ‘지 하고 싶은대로 하고자 하는’ 본성은 애니 어른이나 크기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2030 청년이나 기득권 노인들이나 근본적으로 가진 욕심의 크기는 같다. 마삼중이나 박지현이가 청년이라고 욕심이 없지 않다. 아니, 오히려 노골적인 욕망덩어리들이다.
반면 경험의 총량에 따라 보는 시야는 천양지차다. 엘리트코스를 밟아왔디는 마삼중이는 세상을 보는 눈이 ‘일베’나 ‘펨코’ 밖은 전혀 보지 못히고 보고싶은 마음도 없어보인다. ‘페미’밖에 모르는 박지현이도 마찬가지다. 360도 중에 1~2도밖에 안보이는 시야를 갖고 있으면서 온 세상을 다 알고 세상이 다 부조리하다고 사과하라고 외쳐대는 꼴이다.

욕심은 큰데, 세상시야가 좁은 청년에게 큰 권한을 줘버리니 성인군자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버텨내겠는가. 이경규가 말한대로 무식한 자가 신념을 가지면 얼마나 무서운 법인데…
그 결과가 지금 보는 대로 마삼중이나 박지현이처럼 대의명분없이 자기 욕심 채우기 위해 극단에 치우치고 편가르고 갈라치는 정치가 나오는 것이다.

세상물정 모르고 경험해보지도 않았고 경험할 생각도 없는데 집에 돈이 좀 있어서 정치판에 기웃거리는 청년들이 제 2의 마삼중, 박지현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특히나 요즘세상은 청년청년 노래를 부르는 세상이 아닌가. 전 국가적으로 청년이라는 허상에 몇번 더 데여봐야 이 현상은 고쳐질 것이라 본다.

그리하여 내 생각에는, 청년도 결국은 마케팅 용어일 뿐이다. 나이가 어리다하여 무조건 참신하고 때묻지 않은것도 아니고 나이가 많다고 하여 완숙하고 지혜로운것도 어니니… 본질은 그 사람 자체를 봐야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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