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론즈에 고여있던 내가 오버워치2를 결국 접은 이유

2023. 1. 8. 21:13글/슬픔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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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오버워치1을 친구 하나와 함께 정말 즐겁게 즐겼다.

좋은 PC가 집에 없어서, 매번 피시방에 번거롭게 가야만 했지만 그 길조차 즐거웠다.

어두울 때 들어가서 주변이 밝아지고 나서야 나오곤 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체력이 있었는가 싶다. 이제는 돈 주고 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다.

 

그 때 둘 다 플스4가 있었어서 플스4로 오버워치를 사서 온라인으로 즐기기도 했다.

플스판은 영문버전이었고, 키보드 마우스 없이 패드로만 해야되었지만 이것마저도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오버워치에 둘 다 푹 빠져있었지만 우리의 티어는 높지 않았다. 아니 처참했다.

가장 멀리 가 본것이 실버. 그마저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늘 브론즈에서 있었다.

세간에서는 우리같은 이를 '심해'라 칭했다.

깊은 바다 속에 가라앉아있는다는 의미 같기도 하고,

플레이가 사람의 플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심하다는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신나게 즐기던 게임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들해졌다.

아마도 '둠피스트가 모두를 학살하고 다니던 시절' 즈음이였던 것 같다.

 

세월이 지나고 지나 그 친구도 나도 결혼을 하게 되고

이제 오버워치를 같이 할 물리적 시간의 확보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자연스럽게 게임 자체를 접게 되었다.

오버워치1은 그렇게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오버워치2가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존 시스템, 기존 캐릭터들이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남아있었고 새로운 캐릭터가 추가되었다고 해서 오히려 궁금했다.

마침 오버워치2를 돌릴 수 있는 PC를 이제는 갖고 있기도 해서 호기심에 설치를 해 보았다.

 

너무 재미있었다. 예전같은 느낌이 났다. 캐릭터 간 상성이 뚜렷해지고, 5인으로 팀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팀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예전 오버워치의 긴박감이 돌아왔다. 하지만 내 티어는 여전히 브론즈였다. 열심히 했지만 이제는 늙어버린 눈과 손이 예전만도 못한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딜러는 이제는 꿈꾸기 어렵고 힐러로 가까스로 팀에 도움이 되는 수준의 플레이를 할 뿐이었다.

 

그런데,

너무 재밌었는데,

갑자기 문득 현타가 왔다.

익명의 가상 온라인 공간에서 게임을 하는 이유는 승자가 되어 패자를 조롱하기 위함 오로지 하나 뿐이었고,

패자는 그 와중에 남탓을 하기에만 바빴을 뿐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주어진 역할을 안하는 것은 기본이요, 타인의 부족한 플레이를 감싸줄 생각따윈 전혀 없었다.

그저 이겼으면 "내가 캐리함" 졌으면 "딜(힐)러차이" 이 한문장으로 스스로를 자위할 뿐이었다.

모든게 허무해졌다. 그저 남을 탓하고 스트레스 받기 위해서 게임을 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옛날에 하던 게임들은 이렇지 않았는데, 난이도가 어려운 게임도 즐거움이라는게 있었는데.

이 온라인 협동 게임은 즐거움은 더는 없고 오직 얇팍한 증오만이 유령처럼 공간을 지배하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경쟁전을 떠나서, 인공지능들로만 팀을 구성을 해서 게임을 해 보니 이 점은 더욱 명확해졌다.

그간 발전한 AI기술은 적도 아군도 이제 더이상 바보같지 않고 사람 이상의 플레이를 보여줬다.

게다가, AI들은 각 캐릭터마다 소명을 충분히 하고자 한다.

딜러는 혼자 돌아다니지 않고 팀원과 함께 딜에 충실하고,

탱커는 탱킹을 진짜 하고,

힐러는 최선을 다 해 힐을 준다. 심지어 게임 상황에 맞추어 유동적으로 캐릭터도 바꾼다.

 

팀 상황에 관계없이 한조나 위도우만 고르는 충들, 조금만 밀린다 싶으면 "00차이" 외쳐대는 놈들

게임 던지고 혼자 돌아다니는 놈들이 없다.

오버워치 개발자들이 의도하고자 했던 각자 최선을 다함으로써 원팀이 구성되는 드림 매치가 

AI들에 의해서 비로소 구현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성악설이 맞는 말이라고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면서

배틀넷 프로그램 언인스톨을 시작했다.

AI팀만 구성해서 경쟁전에 갈 수 있게 되면 다시 돌아가볼까,

그렇지 않고서는 오버워치를 다시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위쳐3, 레데리 이런 스토리 좋은 게임 싱글로 돌아다니는게 훨씬 즐거움이 크다.

스트레스도 없고.

아니 애시당초 게임을 하는데 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건가.

 

인간은 관계를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인 동시에,

인간관계를 통해서 평생에 걸쳐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가는 존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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