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26. 02:38ㆍ글/짧은생각
1. 영화의 만듦새
가) 정치적 메세지를 뒤로 하더라도, 영화 자체만으로도 완성도가 상당히 높다고 개인적으로 평을 하고 싶다. 영화 내 양쪽 진영의 팽팽한 갈등구도가 관람객에게 생생하게 전달된다. 그 긴장감 덕분에 상영시간 2시간 30분이 빠르게 지나간다. 이는 우선 실화를 짜임새 있게 배열한 각본 덕분이며, 영화에 나온 모든 배우들의 연기력이 이를 뒷받침해주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 하나 발연기로 영화를 김빠지게 만드는 사람이 없다. 배우 캐스팅에 굉장히 공을 들인 모양이다.
나) 주연인 황정민도 정우성도 이번 영화에서 특히나 연기가 대단하다. 분명 자주 화면에서 보던 사람들이라 그들이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연기 톤이 익숙한데도 불구하고 전혀 위화감 없이 마치 실제 그 사람들 같다.
2. 대한민국 근현대사
가)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정치적 이념에 의해 반으로 쪼개졌지만, 남쪽이나 북쪽이나 독재자에 의해 지배되었다는 본질적 행태는 동일했다. 이 영화는 그 중 '전두환'이라는 독재자가 대한민국 군대를 어떻게 개인 사병처럼 부려서 국가권력을 찬탈하게 되었는지를 그리고 있다.
나) 대한민국은 '목소리 큰 놈이 다 이긴다'는 명제가 성립하는 나라이다. 영화도 이를 잘 보여준다. 정해놓은 법과 원칙과 규정을 지키는 자들은 결국 거기까지밖에 가지 못한다. 목표만 바라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목소리 큰 놈은 결국 모든 것을 가지게 된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실현이 되는지를 영화는 설득력있고 긴박감 넘치게 그려냈다.
다) 영화는 전두환 독재시대가 막을 열며 마무리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은 김씨 일가가 대를 물려서 지배를 하고있는 북한과는 다르게 역사의 수레바퀴를 계속 앞으로 굴려왔다. 전두환의 하나회는 결국 김영삼의 손에 박살이 났다. 전두환은 한 때는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물론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결국은 친일파 청산과 마찬가지로 이 오욕의 역사를 깔끔하게 청산하지 못했다. 전두환은 추징금을 다 내지도 않고 본인의 뿌리인 육군사관학교에 사열을 받으러 놀러 다니며 평생을 사과 한마디 없이 즐기다가 죽었다.
라) 여전히 대한민국은 일부 기득권 세력이 개인에게 주어진 의무를 저버리고 자신들이 필요한 일에만 공권력을 입맛에 맞게 휘두르는 나라이다. 장비가 아무리 좋아도 이를 운용하는 사람이 폐급이면 소용이 없듯, 권력을 쥔 인간이 썩어있으면 국가시스템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영화로 인해 과거의 역사적 사실, 그리고 이것이 오버랩되는 현실이 환기되면서 역사는 또 한번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지금의 현실도 약간의 희생은 감수해야 되겠지만 결국에는 그리 될 것이다.
3. 개인적 만족 포인트
가) 이 영화는 전두환의 12.12. 쿠테타라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이다. 전두환을 '전두광'이라는 가명으로 출연시켰는데, '실명을 쓸 수는 없고 그렇다고 고심해서 이쁜 이름을 지어줄 수는 없으니 대머리니까 대충 두광이라고 하자'라는 느낌이 들게 지은, 전~혀 정성스럽지 않은 가명이라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나) 사건의 발생장소를 자세히 명기해 준 점이 좋았다. 내가 며칠 전에 지나갔던 필동이나 한남동, 양화대교 등등이 이 날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는 점을 느끼게 해 줌으로써 영화가 더 피부에 와닿았다.
다) 영화 엔딩에 군가 '전선을 간다'가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삽입되어 있다. 원래 그 군가가 지녔던 비장미 있는 음율과 더불어 가사가 전해주는 위국헌신의 군인본분과 전두환 일당의 하나회가 군대를 사적으로 휘둘러 국가를 통째로 삼켜버린 상황이 대조대며 침울하게 만들어 주었다. 영화관에서 엔딩곡이 울려퍼질 때, 관람객들이 저마다 자리에서 감정을 갈무리하는지 아무도 먼저 일어나서 나가지 않았었다.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 넋 숨져간 그때 그 자리
상처입은 노송은 말을 잊었네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
4. 여담
이 영화는 1979년 사건을 다룬 '전두환 비긴즈' 격이고,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18일 전두환이 벌인 악행을 다룬 영화이다. 그리고 영화 <1987>은 전두환 정권 막바지 6월 항쟁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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